설교/칼럼

제목온선칼럼-문찬우 목사2015-09-09 10:33
작성자 Level 8

기능과 정신(skill &; spirit)
마태복음 23: 23

직업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잡(job)입니다. 일반적 의미의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캐이션(vocation)입니다. 이것은 소명(召命)이라고 하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천직(天職)입니다. 사실, 사람이 어떤 직업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거의 숙명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일을 하며 수십 년을 지내온 인생만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분야의 일을 택하여 살아온 삶조차도 자유의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하던, 농사를 짓던, 글을 쓰던, 돌을 깎던,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일종의 종교적인 신념 같은 것을 가진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프로페션(professio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전문직이라는 뜻으로, 그 속에는 다분히‘돈 받고 하는 일’이라는 어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던 간에 자기 일을 잘하지 못 하면 비판을 받게 됩니다. 급여에 걸 맞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자신의 대표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직업에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전문성(professionalism)을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기능을 지닌 사람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은 뛰어난 감식안과 기능을 지닌 전문가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라는 감탄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유입니다.

기능적으로 보자면 소명의식이나 도덕성을 운운하던 천직의 시대보다 프로페셔널을 주장하는 자본주의적 시대가 더 뛰어난 인재를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프로페셔널과 기능의 시대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치명적 문제가 있습니다. 기능(skill)의 속도감 있는 발전과 비교할 때 정신(spirit)의 성숙은 굼벵이처럼 느리다는 것입니다. 아예 멈춘 듯 보일 때도 있습니다. 법을 기막히게 해석하며 적용하는 천재 변호사가 정의와 진실에 대한 철학이 없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명의에게 생명존엄에 대한 성찰이 없고, 기막힌 설교로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목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른바, 육체와 영혼, 명예와 인격, 기능과 정신의 이원론적 분열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모든 사람, 모든 일에는 슬럼프가 다가옵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힘겨운 시간이지만, 크게 보면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아픔들이 우리의 분리되었던 육체와 영혼, 명예와 인격, 기능과 정신을 만나게 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단순한 밥벌이가 고귀한 천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업적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는 서러운 눈물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서라도 우리의 직업적 기능이 우리의 고귀한 정신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만 된다면, 고통은 단말마처럼 지나가고 장구한 해산의 기쁨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 놀랍고 새로운 변화를 우리들은 직업의 재편성, 혹은 소명적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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