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논단-성경의 해석과 적용의 자세-안기호 목사 총회 신학원 학감2013-06-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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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해석과 적용의 자세

성경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전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신령한 이야기나 교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그들의 관습,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 그 당시의 법령이나 규범들을 인용한 교훈들, 시, 윤리, 비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 안에는 당시의 관습, 삶의 이야기들, 시, 윤리, 법령, 비유, 인용문 등의 소재들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의 뜻(정신, 사상)을 인간의 삶(의식)에 접목시키기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접할 때, 성경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문장구조라든지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에 치중하는 지엽적인 뜻풀이나 교리적 접근 이전에 성경 전체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 그분의 정신이나 사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 나에게 어떤 생각, 어떤 자세, 어떤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주제에 대해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랑이라고 정의해 주셨다.

막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고자 하는 그분의 정신과 사상은 바로 사랑에 근거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안에 있는 문장과 단어들을 해석할 때, ‘사랑’이라는 주제에 근거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그 당시의 인간의 언어, 인간의 관습, 인간의 삶의 이야기들로 풀이해 놓은 성경’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해주셨다면, 오늘날 목사의 설교도 당연히 사람들에게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상을 전해주는 것이어야 하며, 교리적인 해석이나 지엽적인 뜻풀이가 아닌 성경의 사상에 근거한 오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그들의 관습, 그들의 학문, 그들의 성공과 실패 등에 접목시켜서 하나님의 사상과 정신을 전하고 가르치므로 사람들이 그 정신과 사상에 입각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는 것이다.

경영에는 타기업의 성공사례를 참조하는 벤치마킹(bench marking)이 있다. 말하자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적용시키기 위한, 즉 하나님의 정신과 사상을 본받아서 성공적으로 오늘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벤치마킹의 도구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목사는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설교를 할 때, 그 말씀을 성도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접목시키키 위해서 당연히 시사, 학문, 경제, 정치, 사회 등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한 관심사들을 인용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전인적 설교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시도로써 이른바 역사적-신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경건주의적 해석을 선호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는 간증이나 예화 혹은 겪언이나 명언 그리고 어떤 학문적 내용 같은 것들이 많이 사용된 설교는 참된 복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복음적 설교다’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이 복음이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복음의 골격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다. 십자가는 우리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단순히 골고다의 십자가요, 죄인의 형틀이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도구요,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것이니,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즉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다해 충성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면 그것은 반쪽 복음이다. 반쪽 복음은 온전한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데 있다. ‘십자가를 지셨다.’ 이전에 ‘사람이 되셨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셨다, 사람이 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우리들의 모습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갖고 하나님이신 당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에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의 고난은 단순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데 있지 않다. 그보다 더 큰 고난, 진정한 고난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사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결국은 대속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 성경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과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간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사용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단순히 쉬운 말, 쉬운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 언어(눈높이 언어), 즉 인간의 교육, 문화, 경제, 정치, 사회 속에 녹아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래야 오늘 우리들이 오늘의 생활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은, 말씀이 삶이 되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관습이라는 옷을 입고, 인간의 생활양식의 틀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성경 속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경을 통해 생활 속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을 성경이라는 책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성경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활 속에 접목되지 않으면, 성경 속에 계신 예수가 나의 인격이 되어 나를 통해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되지 않으면, 신앙이 성경 속에만 머무르고(교의적 수준), 교회 안에만 머무르게 되는(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만을 위한 신앙) 위험에 빠지게 된다. 신앙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삶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받은 구원의 모습이 나의 삶으로 나타나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이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만족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