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온선칼럼-문찬우 목사2015-06-26 10:04
작성자 Level 8

살인미소 (killer smile)
(마 19: 19)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 남자 연예인에 대해 ‘국보급 살인미소’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듯, 요즘에는 멋진 미소를 두고 ‘살인미소’라 하는데, 이 표현은 영어의 ‘killer smile'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듯합니다. 아무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사상 최고의 살인미소를 고르게 한다면, 단연코 다수의 사람들이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주인공인 개츠비를 언급할 것입니다. “한 순간 외부 세계를 대면하고 있는 미소였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당신에게 온 정성을 쏟겠다고 맹세하는 듯한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 믿는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최상의 호의적인 인상을 분명히 전달받았노라고 말해주는 그런 미소였다.” (위대한 개츠비, p. 76, 민음사, 2003) 소설 속 관찰자 닉 캐러웨이의 묘사대로라면, 개츠비의 미소는 지상 최고의 미소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살인미소의 지존인 개츠비의 이면에는 그가 세상에 뿜어내는 광휘의 분량만큼의 ‘무겁고 깊은 그늘’이 드리어져 있었습니다. 그늘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높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끝없이 ‘척’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출신, 경력, 학력 등을 속이고 살던 개츠비는 지독한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정서적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증세가 심해질수록 그의 살인미소는 고도의 차원으로 진화했을 것입니다. 그의 내면을 어둡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데이지’라는 여인이었습니다. 개츠비는 그녀를 미친 듯, 바보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사랑했던 그녀는 전형적인 속물로서, 한 순간도 그에게 참된 사랑을 준 적이 없습니다. 데이지는 끝없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소위 말하는, 희망고문을 했고, 개츠비는 그녀의 알 수 없는 태도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다니다가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미소지었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분장을 지우고 거울 앞에 선 늙은 피에르처럼 경멸, 고독, 절망, 비애만을 보여주었던 개츠비. 그는 본 소설이 쓰였던 1920년대의 방황하던 미국 사회의 상징이자, 동시에 끝없이 세상 앞에서 살인미소를 구사하며 구애를 하고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스러져가도록 방치한 채로, 사랑과 행복을 쟁취하겠다며 나서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19: 19) 그 대상이 여자던, 남자던, 인기던, 성공이던, 이상이던, 그 무엇이던 간에, 자신을 파멸하면서까지 소유하려는 심리는 사랑이 아닌, 집착이나 회피, 혹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삶을 삶이 되게 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자유가 있고, 창조가 있으며, 무엇보다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당신의 미소가 당신의 영혼을 억압하고, 지쳐 병들게 하며, 종국에는 죽게 만드는 살인자라면 그 미소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살인미소(killer smile)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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