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1018호 사설2015-04-10 16:09
작성자 Level 8

서울시 광장, 동성애자 축제 안 된다!

 서울시가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의 거리행사인 ‘2015년 제16회 퀴어(동성애자)문화축제’ 개막식을 오는 6월 9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갖도록 허용한 것은 집회행정 관련 법규만 맞으면 사회적·윤리적 부도덕 행위도 조장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이것은 사회의 안녕과 미풍양속을 보호해야할 관공리의 책무를 몰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차별금지’ 등을 이유로 동성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거나, 그 반대 자체를 봉쇄하거나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시도 등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배반하는 행위로 선포하고 있는 데다 동성애자들의 음란· 퇴폐 행위가 사회윤리에도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의 행사를 서울시가 허락하여 서울의 심장부인 서울광장에서 연다는 것은 시민의 수치이다. 기독교계 등 종교계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강력 반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 측은 이에 대해 “관련 조례에 따라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수리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서울시는 집회행정 규정에만 맞으면 부도덕도 조장할 셈인가?

 소망의 4월에 다짐할 일

 한식, 청명, 곡우의 계절. 생명의 봄꽃들이 꿈과 소망을 찬란하게 노래하는 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4월에 먼 앞날을 한껏 바라보면서 어린 나무들을 심는다. 온 누리에 생기가 넘치는 4월에 저마다 존재와 성장의 정체성을 다짐하는 각종 기념일들도 줄을 이어 정해져 있는 이유도, 더욱 밝고 큰 소망을 다짐하기에 족한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5일 부활절, 7일 보건의 날, 20일 장애인의 날, 21일 과학의 날,  22일 정보통신의 날, 지구의 날,  23일 세계 책의 날,  25일 법의 날... 정녕 4월은 소망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달이다.
 교회는 소망을 바로 세우는 일을 감당한다. 헛된 소망을 버리고 참 소망을 심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직무를 갖는다. 참 소망을 가진 존재는 그 매일의 삶도 보다 고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선포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시 119:116) 하였고,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라고 하였다.
모든 참된 인격은 참된 소망으로 충만해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 이 나라의 내일을 짊어져야할 청소년들이 더욱 그래야하겠다. 우리 청소년들이 앞날에 대한 밝은 꿈과 소망으로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병든 사회요 슬픈 일이다. 누구보다 교회가 이 사랑스런 청년들을 밝고 푸른 소망으로 가득 찬 인격으로 인도해야 한다.
  “청소년가치관 국제비교연구”(여성가족부, 2012)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국가에 대한 만족’ 수치는 과거에 비해 상승하였으나,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나라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은 한국 청소년들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중국 청소년들의 47.7%, 일본 청소년들의 35.2%가 다른 나라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응답한데 비해, 한국 청소년들은 51.1%가 그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근년의 청소년종합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여성가족부, 2011) 평일 방과 후 저녁식사 전 여가시간 활동 1순위는 TV·비디오 시청(28.6%)이고,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2011) 에 의하면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율은 10.4%에 이르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나날의 삶에서 맑은 정서적 함양보다는 TV·비디오 시청이나 게임 오락과 같은 찰나적 쾌락에 물들어 있다면 미래에 대한 밝은 소망의식도 병들기 쉬울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통계로 노인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평균 초과, 이혼율 9위 아시아 최고, 경제 침체, 정치 불안정, 북한의 위협 등으로 사회 전체가 우울하다는 걱정들이 어느 때보다 많은 요즘이다. 이 때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며 앞날에 희망이 있으려면 청소년층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여 야망을 가지라!”고 호소할 전위대는 바로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