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1048호 사설2016-07-15 08:58
작성자 Level 8

2016년 여름, 성령으로 충만케 하자

 청소년들의 여름방학이 돌아왔다. 이때를 맞이하여 모든 교회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내일을 짊어지고 갈 우리 청소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기 위해 더 없는 좋은 기회임을 절실히 깨닫고 알찬 일정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요즘 세상을 보면 진정 청소년들이 어떻게 눈과 귀를 뜨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을 배울까? 실로 두렵고 떨리는 세상 세태라 아니할 수 없다. 처처에 살인이요, 성추행이요, 절도·강도요, 사기·횡령이요, 그 무슨 법관·검찰 부장검사의 수십 억·백억 대 치부와 전관예우 탈세·사건 사례비 갈취와 사술이요, 재벌의 비자금 만들기가 어쩌느니, 압수수색이 어쩌느니 하는 요지경 같은 사건들이 넘치고 있다.
진정 세상이 홍수라도 일어나서 한차례 씻겨 내려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교회가 살아 있고 도덕 윤리가 살아 있어 그나마도 악이 억제되고 선이 이기므로 세상 질서가 유지되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은 날이 갈수록 이 대한민국 세상을 더럽히고 있음을 본다.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각인의 심령상태요 양심이라 할 것이다. 이 양심은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깨끗이 유지될 수가 없다 하였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갈5:16-26) 말씀하고 있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만이 세상의 참 소망이 됨은 세상이 혼탁할 수록 더욱 찬란한 진리로 사람들에게 빛난다.
요한 웨슬리가 1720년대에 영국 대 각성 운동을 벌일 때도, 1730년대 미국에서 요나단 에드워드가 영적 각성 운동을 벌일 때도, 저 1907년 길선주 목사가 평양 대 부흥운동을 전개했을 때도,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은 가슴을 치고 통회 자복하고 더럽고 죄 많은 행실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는 역사가 강물처럼 흘러 넘쳤다고 한다. 요한 웨슬리가 영국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었으니 강도와 도적이 줄어들어 감방 안이 비어갔고 거리에는 술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모두가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닥친 결과였다. 성령의 바람이 저 무서운 토네이도 회오리처럼 불어오려면 그 중심에 이 땅의 영적인 지도자들, 성령충만한 목회자들, 교회들, 평신도 지도자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2016년 여름, 청소년 방학이 겹치는 7-8월에는 우리 모두 성령충만하여서 이 띵을 변화시켜야한다.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 6의 합헌을 판결하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군 바른인권연구소'등 105개 시민단체는 지난 6.22.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대 내 동성애를 금지하는 군형법을 반드시 존치시켜야 한다고 촉구하고,  군 내 동성애를 금지하는 '군형법 제92조의 6'에 대한 ‘합헌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또 개최했다.
이들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을 향해 “군형법 제92조의 6 위헌소원 사건(2012헌바 258) 합헌 판결을 염원하는 안보단체 및 학부모단체 총연합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군인의 항문성교를 금지하는 군형법 제92조의 6은 군기 확립과 군 전투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대한민국 군대는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이 있고 젊은 남성 의무 복무자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회적 동성애'라 할 수 있는 남성 간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군형법 92조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군형법 조항이 '반인권 조항'이라고 지적하며 법안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강하게 개진되어 온다.
폐 일언하고 헌재는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질서 전체를 감안하여 인륜과 양심이 앞서는 판결을 해야 옳다. 굳이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권’이란 자연법적인 신의 질서를 어기는 권리가 아니요 헌재의 재판 판결도 그 범위를 넘을 수 없음이 진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