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신앙의 산책-전오 권사2013-08-24 08:21
작성자 Level 8

병상에서

“엄마, 엄마는 소원이 무엇이우?”
“소원? 무슨 소원?”
“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난 5월의 꽃 아카시아가 창밖 저쪽에서 처연하게 웃고 있다.
“며칠 있음 저 꽃들은 눈처럼 휘날릴 거야 엄마.”
84세 어머니를 간호하는 65세의 따님과 노모와의 대화이다.

20여년 동안 병문안을 위해서는 입원실을 방문해 보았지만 내 자신이 입원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밤 내내 소아병동 복도에서 고통스럽게 울어대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간호사들의 바쁘게 걷는 슬리퍼 소리, 몇 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음급차의 비상 사이렌 소리 등, 병원 24시간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듯이 갑자기 일어난 복통으로 인해 정신까지 잃고 밤 내내 화장실을 오가다 출근길에 잠시 들린 병원에서 입원까지 할 줄이야! 생사화복은 오직 나를 창조하신 분의 권한이며 나의 소관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으로 부족하기만 했던 나날들, 모든 일들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분명 교만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리라.

휴식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뭔가에 쫓기는 생활.
몸은 앉아 있어도 머리에는 항상 몇 가지의 과제로 진정한 휴식이 없었던 그동안이었지만 이 조차도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겠거니 하며 그저 감사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이 붐명하다. 포화상태를 이기지 못해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결국은 강권적인 역사로 하나님께서 편한 안식을 주심도 감사한 일이다.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셨다.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 본적이 없는 나에게 병원에 있는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라는 뜻도 계실 것이다.

“너희는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임을 감사드린다.
내 입원실에는 3인실이라 나 외 두 분의 환자가 더 계신다.
오른쪽 침대에는 84세의 고령임에도 육중한 몸무게를 가지신 여걸풍의 할머님께서 당뇨 합병증으로 들어오셨다. 시간만 나면 “밥 먹었어? 오늘도 굶어?” 하시며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말을 건네주신다. 65세 큰 따님이 간호를 하시는데 그 분 자신도 가누기 힘든 노인이시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의 막내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가정 사정으로 자주 못 들리고 하루에 한번 정도 잠깐 들렸다가는 정도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환자 할머니는 자기으 몸을 이기지 못해 소변이 금방 바지에 젖어 큰 따님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으실 때는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여걸로 75세까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병원도 다녀 본 적이 없다는 건강했던 분이라는데 그러나 나이에는 장사 없다고 따님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병실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왼쪽 침상에는 83세의 할머니가 누워 계신다. 24시간 주무시고 24시간 깨어 있는 할머님이다. 일곱 공주를 키워서 모두 출가시키고 43세 막내만 출가하지 않고 노모님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손끝이 닳도록 일곱 딸을 키웠지만 그 많은 자식 중 한자식도 어머님 옆에서 간병할 수 없어 줄곧 간병인이 간호하고 있다. 하루에 몇 번씩 들리는 따님들이지만 본인은 전혀 알아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저 눈만 깜박이고 계실 뿐 말씀 한마디 하시지 못한다. 단지 식사 줄을 위로 연결하느라 수술한 자국에 드레싱을 할 때면 고통에 못 이겨 ‘끙!’하고 신음을 하며 얼굴을 찌푸리신다. 다행한 일은 강병인이 천사처럼 지성으로 할머님을 간호해 드린다.
어느 딸, 어느 며느리가 저렇게 지성으로 간호할 수 있을까? 한시간 간격으로 쏟아내는 소변을 말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며 쉴 틈 없이 주무르고 마사지하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통풍시키고. 구경하는 사람도 감사가 느껴진다.
그나마 할어님께서 간병인 복이 있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중한 상태에 저렇게 따뜻한 간병인을 만났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의 일생을 아침 안개에 비유한 전도서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침 안개’
하나님께서 귀한 시간 주셨는데, 그 시간을 가장 값지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록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모처럼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여느 시간보다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