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신앙의 산책-전오 권사2014-02-20 10:46
작성자 Level 8

유리창을 닦으시는 어머니

누군가 인생을 유리창에 비유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맑고 투명한 유리였는데 인생의 여정에서 갖가지의 오물과 때가 묻어 뿌옇게 불투명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삶을 마감할 때엔 뿌연 때를 닦아내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삶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어머니께서는 유리창을 닦고 계신다.
누구보다 열정이 많으시고 의욕적이셨던 우리 어머니,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러셨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특별한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던 어머니시다.
어머니께선 열일곱살 되던 정월 열이레 날에 시집오셨다고 한다.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우리 아버지와 혼례를 치르고 첫날 밤 처음 얼굴을 보니 얼굴이 길고 무섭게 생겨서 많이 떨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만났지만 아버님 80세, 어머니 75세까지 함께 원앙처럼 사셨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크게 식량 걱정 없이 지내던 우리 가정이 삼남매의 학비를 대시면서 어머니는 농사일을 머슴처럼 하시고 농한기 때는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시며 우리 삼남매를 전문직으로 키우셨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같은 해에 천국으로 보내신 후, 건강이 나빠져 6년 동안을 누워 계시며 유리창을 닦으신다. 눕기 시작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질과 양이 변치 않은 영양 죽과 생과일 쥬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날마다 날마다 조금씩 촛불이 사그러지 듯 기력이 쇠잔해지신다.
며칠 전, 꿈속에선 하얀 소복을 입으시고 너무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하시어 어머니를 붙잡고 펑펑 울다 내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급히 어머니 방으로 달려가 보니 평안히 잠들어 계시어 얼굴과 손을 만져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간절히 기도드리고 나왔다.
‘정말 가시려는 것일까?’
어젯밤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복받쳐서 기도를 드릴 수 없어 내 방으로 건너와 한참을 울다 다시 가서 기도를 시작하려고 어머니 얼굴을 보니 또 목이 메어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다.
‘엄마, 사랑하는 내 엄마, 어떻게 보내드리지요? 이렇게 따뜻한 손, 따뜻한 볼, 어느 곳을 만져보아도 우리 엄마는 이렇게 따뜻하고 온 몸에서 정이 묻어나는데 어떻게 보내드리지요?’
가슴 깊은 곳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
우리 삼남매를 키우시느라 손마디는 머슴처럼 굵어지셨고 너무나 많은 육체적 노동으로 온 몸이 성치 않으셨던 어머니, 참으로 죄송한 일, 말할 수 없는 불효로 감당할 수 없는 회한이 밀려온다.
‘나무는 조용히 서 있고자 하나 바람은 멈추지 않고 자식은 효도를 다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얼마나 이 말을 되뇌이며 가슴 아파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넘기시는 일이 힘들지 않아 음식을 드실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였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에 건강이 확연히 달라지고 계신다. 죽을 넘기시기에 너무나 힘들어 2분 내지 3분을 노력하시어 겨우 삼키시니 죽을 떠 넣어 드리는 나도 진땀이 나는데 본인인들 얼마나 힘이 드실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어진다.
힘들게 한 모금 넘기실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드리며
“우리 엄마 잘 드셔서 오래 사시겠네!”
“아유, 잘 드시니 너무 예뻐요.”
갖은 말을 다 동원하여 칭찬해 드리며 머리를 쓰다듬어 아예 머리카락이 납작 붙어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칭찬을 해드리면 힘없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응!” 하며 흐뭇한 대답을 해주신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 어머니의 방으로 가서 혈압을 체크하고
“엄마, 혈압도 정상이고 맥박도 정상이네요. 오래 사시겠어요.” 하면 또 흐뭇한 대답을 해주신다.
“엄마, 엄마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올께요.” 하면 또 그 특유의 흐뭇한 대답을 해주신다. 그러나,
“학교에 다녀올께요. 밖에 잠깐 다녀올께요.”라는 말에는 대답을 하시지 않아
“엄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주세요!”하며 떼를 쓰면 마지못해 대답해주신다.
어머니께서는 비록 말씀은 잘 못하시지만 자신의 감정을 대답으로나마 잘 표현하심에 감사하다. 딸이 자신을 위하는 말이나 일에는 반갑게 대답을 해주시고 기타 다른 일로 떠나는 것은 싫으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위하여 온전한 하루를 함께 해드리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가실 날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곁에 함께 하지 못한 나의 불효는 두고두고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별 연습!
사실 나는 어머니께서 쓰러지시던 6년 전부터 의연하고 침착하게 잘 보내드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왔고 이별 연습을 하여 왔던 터였다. 그러나 막상 때가 가까워 옴을 느끼며 어머니를 보내드릴 일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평생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셨던 어머니로서는 고통 없는 낙원에서 영원을 누리실 수 있는 새 세상으로의 출발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드려야 한다.
누가 겨울을 나무의 마지막이라 말하는가?
황홀한 시작을 꿈꾸며 맹렬하게 봄을 잉태하는 겨울은 항상 시작의 희망을 암시한다. 새 봄이 오면 모든 나무는 다시금 새로운 얼굴로 태어나는 것처럼, 나의 어머니도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영원을 누리실 생명의 시초를 다시금 준비하시고 계실 것이다.
부지런히 유리창을 닦으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