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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교지에서 온 편지 -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김상봉 목사2018-11-24 19:22
작성자 Level 8

선교지 단상=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왔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당면한 현실적인 원인이라면 일단의 장기비자취득이 용이하고 비자발급 비용이 타국에 비하여 싸다는 이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선교사로서 수행해야만 할 일은 돈, 물질, 아니면 어떤 유의 인간적 권위나 명예를 구하는 일이 아닌 바로 한사람의 인격이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되도록 인도하여 마침내 그 깨달은 믿음이 하늘에 이르러 종국에 소원하는 바 구원의 나라를 얻게 하는-, 귀한 영혼 그 자체일 뿐 더 이상은 없다.

말하자면 가시(可視)적 가치관을 초월한 영적인 하늘의 뜻에 적합한 가치관이 저들 인격중심의 바탕이 되어 설사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민족같은 각박한 현실을 안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삶의 현장에 개입, 간섭하심으로 자신을 의지하기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 하여 마르지 않는 소망의 기쁨과 바라는 바 믿음의 비-젼을 가꿀 줄 알고 여하한 경우가 닥칠 진정 이에 굴하지 않고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삶의 현장을 일구어가게 함이다.

돌이켜 보면, 이조말엽에 우리 땅에 들어왔던 파란 눈의 서양선교사들, 언더우드, 스크렌튼, 알렌, - 저들은 일생을 바쳐 조선의 계몽과 영혼구원을 위해 먼저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그리고 십자가를 세웠다. 만약에 저 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주님의 갸륵한 사랑을 스스로 몸에 담지 않았다면 과연 그처럼 자신의 일생을 온전한 희생 제물로 내어 줄 수가 있었을가, 그들에게 바람이 있었다면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의 더 없는 위로와 천국을 더욱 사모하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진작부터, 보이는 세계는 잠간이지만 보이지 아니하나 영생하는 천국이야말로 불멸하는 영생의 세계임을 온 몸으로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몸으로 부닥쳤던 선교현장이란 한 마듸로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상황으로 영생을 부르짖기 이전 당장의 호구가 급박한 가난과 무지로 얼룩진 선교의 불모지, 제도적이며 정치적인 모든 장치, 문화적인 갭, 시급한 경제, 등등이 태산처럼 가로놓인 망국(亡國) 직전의 조선이란 나라에서 단지 부름 받은 사명감 한가지만으로 헤쳐 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람이 맨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란 언제나 그 한계라인에 부닥쳐야만 하고 그래서 선택의 기로를 당하면 갈등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과 혼과 골수를 쪼개는 생명력, 그 자체이지만 문화권이 다르고 언어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최선책이라면 역시 눈에 보이는 형태, , 교육시설, 의료시설, 성경번역, 등등의 구호와 문화사업을 실시(實施)해 나감으로 현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공유대(公有帶)를 이루며 가깝게 다가가야만 한다.

이후에 세워진 구원의 십자가, 그것은 오늘날 한국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온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지만 어느새 어느 시점에서 부터 어떤 동기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는지 전능자의 말씀이 마치 개인적인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음은 아무래도 시절이 촉박함을 알리는 세기말의 징조로 밖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엄중히 경계하는 바, 그것은 말씀 그자체로서 우리들 영혼구원의 뿌리이며 어떤 경우에도 변개됨 없이 심중에 보존하여 이를 지켜 감으로서 변화 성숙되어가는 성령의 성품이어야 할 것이며 어떤 유로도 생계를 위한 방편이나 수단처럼 앞세워 나가거나 혹은 권위에 편승한 일개인의 정치적인 존재를 과시하는 도구처럼 이용되어선 결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사람이 한걸음 먼저 하나님 전에 앞 서 나아가는 행위란 곧 스스로가 신의 자리에서 우상(偶像)적인 존재로 군림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면 무엇일가, 돈 많은 재벌, 권력중심의 대통령, 아님 어떤 언론집단의 대표, -벨 수상자? 아니다. 마치 마르지 아니하는 샘처럼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워라면 다름 아닌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곧이 곧 되로 믿고 늘 말씀 가운데서 주신 약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스스로의 주어진 환경이 어떠함을 불문하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동참할 수 있어며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를 가장 겸손한 자리에 낮추어 앉아 타인의 여타 행위라도 인간적인 정죄와 심판의 눈으로 보기 이전 관용과 이해로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자세일 것이다.

가시적인 형태의 여하한 힘의 형태란 하나님을 신앙함으로써만이 시행할 수 있는 힘의 영역을 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음은 저들은 저울에 달을 수 없는 어떤 것이라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극기해야만 하는 것, 나도 모르게 자리잡은 타인에 대한 어떤 유의 혐오감-, 그 용서치 못하는 마음 한가지로 인해 피치 못할 만남의 현장에서 당연히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이 단절되어서는 안 될- 하시라도 께어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도 실족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닌가,

일흔에 일흔 번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한 걸음도 저들 앞에 나갈 수가 없는 우선적으로 돈이나 물질이 선행되어야만 서로간의 교통이 가능한 가혹한 선교의 현장에서 하나님 전에 비추이는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가,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전인적인 주님의 성품을 실현하고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 친히 부족한 종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찰하셔서 곤비한 영혼에 단비와 같은 주의 약속의 은사인 영음과, 환상과 꿈과, 그리고 계시와 묵시와 은혜와 은사, 그리고 더한 깨달음의 말씀을 주시고 친히 인도하셔서 부족한 종의 삶의 현장에 임재하고 계심을 증거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20181116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김상봉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