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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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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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3:21

한재명 목사

순복음성은교회 담임
경기중부 제 2지방회 회장

최근 아이티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나오자 세계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뻐하라는 말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다 해도 기뻐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요, 슬픔을 이기는 영적무기인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본문에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살전5:17), “항상 기뻐하라”고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며 웃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됨

그 당시 죄수들이 갇혀있는 감옥은 처참한 형태의 환경이었습니다. 지옥에 가까운 곳에서 기뻐하라는 말은 영육간의 능력이 되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합니다.
베드로의 감옥(행12장)과 바울사도와 실라가 갇혀있던 감옥(행16장)을 상상해 봅시다.
손과 발에 착고가 채워져 있고 마음대로 편하게 앉거나 누울 수도 없었을 것이니, 그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은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생존수단이었으며,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형편에 처해 있을 때 믿음으로 이겨내는 영적무기임을 말해줍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프고 절망적인 어두운 시기는 독일 독재자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한 사건일 것입니다. 그 곳에서 무사히 탈출한 미국의 정신의학 박사 빅터 프랭크가 증언하기를, 유대인 동료들이 가스실로, 인체해부 실험실로 끌려가는 죽음의 현장 속에서도 서로 웃음을 잃지 않고 절망을 극복하며 슬픔을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예수 없는 삶은 괴로움과 고통으로 쓴맛을 주지만 주안에서의 기쁨과 웃음은 쓴맛을 단맛으로 변화시키는 양약입니다.
현재만 바라보면 슬픔과 낙심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것을 바라본다면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다면 어떠한 고난의 현장 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영육 간에 건강을 공급하는 힘이 됨

그 당시 감옥은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캄캄한 지하땅굴 속이며 각종 벌레와 쥐들이 들끓고 습기로 인해 물이 썩어 악취를 풍기며 충분한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건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뻐하며 웃음을 갖는 것은 정신적인 건강을 주고 신체 장기에 자극을 주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호흡을 활성화 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엔돌핀이 나오게 함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450회 웃고, 어른은 15회 웃는다는 의학적 통계가 있지만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웃을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사춘기를 겪으며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갖게 되고 가정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면서부터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고 성인이 되어 현대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과 웃음으로 기적을 산출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나이 많아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창18장)
우리들의 신음소리도 들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약간의 미소를 통하여서도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옛날에는 “웃으면 복이 온다”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웃어야 산다”라고 말합니다.

셋째,복음을 증거하는 힘이 됨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쁨과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역사를 체험하게 합니다.
바울사도는 감옥에서 큰 소리로 “항상 기뻐하라”고 외쳤을 때에 다른 죄수들이 듣고서는 “저 사람 돌았나봐”라면서 비난했겠지만 바울사도는 마게도냐 감옥에서 착고에 채인 체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드렸습니다.
바울사도는 죄수와 간수를 구원시키는 체험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뻐하며 웃는 것은 예수 안에는 기쁨이 있고 예수를 믿는 것이 이렇게 좋다는 것을 알리며,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기뻐하는 일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서 저 사람은 무엇이 그렇게도 좋기에 날마다 저렇게 싱글 벙글 웃고 기뻐하는가? 나도 저 사람 믿는 예수를 믿어 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일뿐 아니라 우리의 표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도들이 기쁨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 중에 또 한 가지 비밀은 절망과 낙심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신 뜻이었습니다.

결론,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하신 말씀은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며 영육간에 건강을 유지하고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